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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생태 언어

우리는 왜 가족으로 살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의 형태로 삶을 살아간다. 그것을 평범한 것으로 여긴다. 왜 가족으로 살아가는지를 고민하거나 다른 삶의 형태를 선택하기 어렵다. 가족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는 그다지 자유롭지 않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일어나는 친밀한 폭력과 그로 인한 상처가 만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랜 시간 사회적·경제적 제도로서 작용하며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다. 그 제도와 이데올로기는 긴밀하게 연결된 채로 서로를 강화하고 우리 삶에 가족이라는 벗어나기 힘든 틀을 씌웠다.

  그 틀 안에서 생산되는 언어들을 되짚어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점검하고자 한다. ≪가족 생태 언어≫ 전시를 통해 가족을 말하는 언어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작가 본인의 생태를 한 공간에 놓아본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가족을 이해하는 다양한 시선과 더 나은 삶의 방식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가족 언어

  수많은 언어의 집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언어가 규정하는 삶을 살고 그것을 다시 언어로 규정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언어를 받아들이기도, 반대하기도, 아무 의심 없이 그저 두기도, 인식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게 언어는 우리 삶에 뿌리내리고 번식한다. 우리는 언어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언어는 강력한 힘으로 우리의 사고와 감정, 행동을 조직한다. <가족 언어 ― 베끼기>는 가족 이데올로기 안에서 만들어진 언어가 나에게 인식-체화되는 과정을 재현하는 작업이다.

  가족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족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가족으로 살아가는 생태를 표현하는 적합한 언어를 찾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뒤져보았다. 특히 인류학, 사회학, 페미니즘 도서들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얻은 언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하고자 했다. 그래서 책에서 수집한 유의미한 가족 언어들을 트레이싱지와 연필을 사용해서 베끼는 과정을 수행한다. 트레이싱지는 반투명하여 복제하고자 하는 대상을 수월하게 베낄 수 있다. 하지만 연필을 사용하기 때문에 베껴진 언어들은 번지기도, 지워지기도 한다. 원본 언어의 반듯함은 내 손을 거쳐 베껴진 후 삐뚤삐뚤 불완전하게 보인다. 가족 언어를 베껴 쓰는 동안 잊고 있던 생각, 감정이 문득 다시 떠오른다. 기존의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위로되는 언어를 마주친다. 공감할 수 없는 언어도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베끼는 행위만 남기도 한다. 베끼는 행위를 수행하며 개인의 삶 구석구석으로 흘러들어오는 가족 언어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낱장으로 베껴진 언어들을 서로 간의 상관관계 또는 유사성을 기준으로 재조합하고 전시공간의 곳곳에 붙인다. 그 달라붙은 모양새는 마치 곰팡이처럼 보인다. 곰팡이처럼 뿌리내려 번식하는 언어들은 깨끗한 벽을 물들인다. <가족 언어 ― 베끼기>는 전시를 관람하는 이의 모든 시야에 걸리면서 가족 언어가 어떤 모양새로 우리 삶에 침투하였는지 감각하게 한다.



가족 생태

  서로를 살게 하는 돌봄, 책임, 사랑…, 서로를 죽이는 증오, 죄의식, 구속…. 가족으로 살면서 수많은 것들과 마주한다. 그것들을 생각한다.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그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가족 밖에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가족으로 사는 삶에 존재하는 수많은 제도, 사건, 감정을 ‘가족 생태 요소’라고 여기며 명확한 문자로 실체화된 요소들을 암시적인 기호로 전환한다. 문자를 기호로 전환하는 일은 가족 내부의 모습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하여 가족 생태의 실체를 암호화하는 과정이다. 기호로 암호화한 가족 생태 요소를 ‘나열하기’, ‘그리기’, ‘균형잡기’ 세 가지 방법으로 재구성한다.

  첫 번째, <가족 생태 ― 나열하기>는 가족 생태 요소들을 롤지에 연필로 그려 나열한 작업이다. 롤지의 한 면에는 문자로, 반대면에는 기호로 양면에 가족 생태 요소를 나열한다. 둘둘 말려 있는 롤지는 그 안의 내용을 감추고 있다. 롤지를 길게 늘어뜨리면 가족 생태 요소들이 가지런히 드러난다. 마구 풀린 롤지는 복잡하게 엉켜 가족 생태 요소를 혼잡하게 드러낸다.

  두 번째, <가족 생태 ― 그리기>는 기호화된 가족 생태 요소들을 넓은 종이에 주관적인 기준으로 배치하여 그린 작업이다. 각 요소의 적절한 위치, 크기, 수량, 진하기 등을 고려해 하나씩 그려나간다. 수많은 요소를 한 장의 종이에 그리다 보면 요소들끼리 여러 번 겹쳐져 본래의 기호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각 요소를 온전한 기호로 읽을 수 없게 된 그림은 작가의 복잡한 가족 생태 풍경을 보여준다. 크고 짙게 그려진 요소만이 복잡한 풍경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세 번째, <가족 생태 ― 균형잡기>는 가족 생태 요소들의 성질을 질량으로 전환하고 요소 간의 균형을 맞춰 모빌 형태로 만든 작업이다. 가족 생태 요소 간의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서 높은 질량의 요소는 중심축에 가까이 위치해야 한다. 반대로 낮은 질량의 요소는 중심축에서 멀어진다. 종이로 만들어진 가족 생태 요소들은 질량의 차이가 크지 않아서 미세한 자리 이동만으로도 순식간에 균형을 잃어버린다. 각 요소의 자리를 신중하게 선택한 후에 아주 조금씩 이동하며 가족 생태 요소 간의 균형잡기를 시도한다.

 
가족 생태 언어

  ≪가족 생태 언어≫ 전시에서 <가족 생태 ― 나열하기>, <가족 생태 ― 그리기>, <가족 생태 ― 균형잡기> 세 작업은 각각 분리된 공간에 독립적으로 자리 잡는다. 전시 공간 ‘소쇼(SOSHO)'는 주택의 형태와 화이트큐브의 조건이 공존하는 곳이다. 대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작은 마당에 흙과 돌, 식물들이 있다. 마당을 지나 연식이 느껴지는 현관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면 거실, 두 개의 방, 화장실이 있는 주택 구조의 공간이 하얗게 정돈되어 있다. 전시 공간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시선을 두게 되는 작업은 <가족 생태 ― 그리기>이다. 작가의 가족 생태를 함축하여 담고 있는 이 드로잉은 거실의 한가운데 걸린 채 족보나 가족사진을 대신한다.

  전시 공간 입구와 좀 더 가까운 작은방에는 <가족 생태 ― 나열하기>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형태로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 관객은 천장에서부터 풀어져 내려오는 롤지에 나열된 문자와 기호의 일부 내용을 읽어볼 수 있다. 하지만 롤지의 대부분이 바닥에 엉켜있기 때문에 전시에서 다루고 있는 작가의 주관적인 가족 생태 요소는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노출된 요소를 통해 관객들은 각자 다른 가족 생태를 상상하며 전시를 관람한다. 가장 넓은 공간인 큰 방은 <가족 생태 ― 균형잡기>로 채워져 있다. 관객이 큰 방에 들어서면 그 인기척이 만든 공기의 움직임으로 인해 모빌 형태의 작업이 천천히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관객이 작업에 가까이 다가올수록 커진다. 가벼운 종이로 만들어진 <가족 생태 ― 균형잡기>는 아주 작은 인기척에도 움직이지만 그 방에 아무도 없는 시간에는 마치 고정된 조각품처럼 고요히 매달려 있다. 가족 생태는 충분히 움직일 수 있지만 누군가의 행위 없이 자동으로 변화하지는 않는다.

  전시 공간 구석구석에 풀로 붙인 <가족 언어 ― 베끼기>는 전시 기간 동안 풀의 접착력이 점점 약해지면서 일부는 벽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분명한 필요성을 기반으로 체화된 언어들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게 된다. 우리 생태는 계속 변화하고 늘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현 생태의 곳곳에 우리가 읽어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구석진 곳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허리를 굽히고, 쪼그려 앉고, 까치발을 들어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헤아릴 수 있다. 생태를 읽는 일에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얼마나 몸을 움직이는지, 얼마나 가까이 들여다보는지에 따라 가족 생태 언어는 다르게 인식된다.



가족 생태 언어

Oct 6~18, 2020

SOSHO, Seoul

  • Curated by Dahye An
  • Text Dahye An
  • Graphic Design Han Gonggi
  • Photo Han Gong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