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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

  어떤 집안이든 저마다의 갈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집은 성매매와 술에 중독된 아버지, 히스테리적인 어머니, 그런 부모를 무기력하게 방관하는 자식들로 인해 화목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자전적 이야기를 미술 작업으로 솔직하게 표현한다. 가족 안에서 생긴 상처의 고통과 슬픔을 은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첫 번째 개인전 ≪폐가≫에서 나는 집안에서 경험한 사건들로 생긴 사적인 트라우마를 관객과 공유한다. 한 개인의 가족 경험은 성북동 62-11번지 오래된 집을 ‘폐가’로 만든다.

  전시 공간 ‘오래된 집’은 이름 그대로 아주 오래되어서 머지않아 무너질 것 같다. 삐거덕 소리를 내는 녹슨 철문을 열고 공간에 들어서면 곰팡이 냄새가 진동한다. 좁고 어두운 실내에 식탁, 침대, 사진 액자, 장난감 등 가구와 소품을 재료로 이용해 만든 작업들이 배치되어 있다. 내가 미성년이었던 시절 집에서 경험한 사건과 감정을 성인이 된 후에 재구성한 작업들이다.

  식탁은 엄마의 히스테리가 가장 자주 발산되는 자리였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매일 밥을 해먹이면서 밥과 함께 자신의 감정도 자식의 몸속으로 들여보냈다. 밥을 먹는 도중 갑자기 엄마의 히스테리가 분출되면 식사 자리는 체할 것처럼 불편해졌다. 엄마의 히스테리는 그의 남편인 나의 아버지로부터 만들어졌다. 엄마는 식탁 위에 자신의 남편에 대한 욕을 마구 흩뿌리곤 했다.

  체할 듯 불편한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이런 방법으로 나에게 주입되었다. 이 방법은 나의 유년 시절 내내 반복되었다. 엄마의 감정이 가득 담긴 말을 통해 나는 아버지에 대한 대부분의 인식을 만들었다. 엄마의 히스테리를 기반으로 전해진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객관성이 없다. 그렇지만 진실이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욕을 반찬 삼아 불편한 밥을 먹어야 하는 엄마의 밥상을 재현한다. 4인용 식탁에 조각도로 글자를 파내어 아버지에 대한 인식을 새겨 넣는다. 조각도로 식탁을 파면서 나온 톱밥을 밥그릇에 담는다. 밥그릇 옆에 수저를 놓는다. 이렇게 내가 먹고 자란 밥상을 스스로 다시 차려본다.

  누수로 얼룩진 오래된 집의 벽에 사진 액자가 걸려있다. 액자 속에는 가족의 일상을 담은 30장의 사진이 들어있다. 사진은 부분적으로 지워져 있다. 지워진 부분은 아버지가 있던 자리이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세뇌 당한 나는 아버지를 혐오하게 되었다. 혐오의 감정을 담아 사진을 사포로 문질러 나의 시간에서 아버지를 지워버린다.

  나는 엄마의 딸로서 아버지를 정화시키라는 명을 받게 되었다. 거역할 수 없는 엄마의 요청이다. 늘 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나는 아버지의 딸로서 아버지와 맞서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태도는 혐오와 체념이었다. 나의 체념은 엄마의 원망을 샀다. 엄마는 나로 인해 더욱 외로워졌다. 나는 언젠가 적극적으로 아버지를 파괴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게 되었다. 엄마에게 떠밀려 아버지를 파괴하는 허황된 방법을 구상한다. “니 애비는 좆이 문제야”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아빠는 좆이 문제야’ 나는 밤마다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아버지를 거세하는 방법들을 드로잉으로 기록한다.

  문제적 아버지를 가진 나는 엄마의 인내와 보살핌 덕분에 무사히 성인이 되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 모든 것을 견디는 엄마. 나의 엄마는 세상이 요구하는 모성을 충실하게 실천했다. 엄마는 모성을 실천하며 집에 갇혀버렸다. 엄마는 집에 갇힌 채 치열하게 가족을 견디며 지독해진다. 엄마는 안락하면서도 징글징글하다. 나는 엄마를 계속 생각한다. 엄마에게 미안하다. 엄마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 문제적 아버지와 지독한 엄마. 나는 그 누구도 선택하고 싶지 않다.

  가족 해체 위기와 가족 구성원 간의 다방향 폭력은 지긋지긋하게 반복된다. 이 반복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에 다시 생채기를 낸다. 무한히 되풀이되는 폭력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너덜너덜한 흉터를 남긴다. ≪폐가≫에서 나는 사적인 가족 경험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가족 안의 문제와 갈등을 가시화하고 가족이라는 개념이 갖는 호소력과 불편함을 말한다. 가족 안에서 숨통이 막힌 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고백이 작은 숨구멍이 되기를 바란다. ‘폐가’는 만연하다.

 

폐가

Aug 14~Sep 1, 2015

Old House, Seoul

  • Curated by Dahye An
  • Text Dahye An
  • Photo Jinu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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